창세기와 금강경이 들려주는 ‘냄새 남’과 ‘자율성 결여’ 극복기



우리는 가끔 삶의 한 귀퉁이에서 뜻밖의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는 실제로 나는 냄새일 수도 있고, 타인의 시선 속에 상상된 냄새일 수도 있다. '냄새 남'이라는 꼬리표는 묘하게도 자기 확신이 약해졌을 때만 코끝에 감지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나 '자율성 결여'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누군가가 밑줄 그어준 길 위를 걷는 동안,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에게서조차 탈취제를 뿌리고 싶어진다.

창세기를 펼치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 위에 "빛이 있으라"는 한마디가 울린다. 그 말은 세상을 정리한 명령이 아니라, 어쩌면 코끝에 맴도는 애매한 냄새를 정직하게 비추는 조명에 가깝다. 냄새의 정체가 불안이든, 수치심이든, 미처 씻어내지 못한 오래된 서사든, 그것을 숨기려 들수록 더 진해진다. 반대로 빛을 비추면 희한하게도 공기부터 달라진다. 감춘 것을 밝히는 용기가 자율성의 첫 문이다. "이건 내 냄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창문을 연다." 이 간단한 선언은 고백 같지만, 사실은 창세기의 첫 창조처럼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언어다.

금강경은 모든 것을 단단히 쥐려는 마음을 가볍게 흩어준다. 집착이 강할수록 자율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보여야 한다'는 집착은 '나는 지금 이렇게밖에 못해'라는 오해와 같은 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말한다. 상(相)에 매이지 말라고. 냄새든 이미지든 평가든, 그 모든 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구름이다. 구름의 냄새가 어제의 빗물을 닮아 있을 수는 있지만, 오늘의 하늘을 영원히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코끝에 닿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맡되, 그 냄새로 당신의 이름표를 만들지는 말자. 이름은 당신이 짓는다. 그 권한이 바로 자율성이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묻힐 때, 화면 속 타임라인이 우리를 대체할 때, 자율성을 잃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자율성은 다른 사람이 승인해주는 시스템 권한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의 이름이다. 냄새가 난다고 해서 내가 지저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쌀을 씻고, 신발을 말리고, 감정을 환기하면 된다. 생활의 작은 제스처는 자존감의 큰 탑을 쌓는다. 창세기의 질서가 하루하루 쌓여 '좋았더라'로 끝나듯, 일상의 작은 정리는 마음의 큰 울림을 만든다. 설거지는 그릇만 닦는 일이 아니라 내면의 그릇에 붙은 어제의 기름때를 문지르는 일이다.

유머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식이다. 냄새가 난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말해보자. "내 삶이 너무 뜨거워서 향기가 증발 중이야." 농담은 문제를 지우지 않지만, 문제를 들고 있는 내 손을 가볍게 만든다. 가벼운 손은 더 멀리, 더 오래 붙잡을 수 있다. 금강경의 지혜가 무집착이라면, 유머의 기술은 무심함이 아니라 유연함이다. 유연한 사람에게 자율성은 특권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그 습관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환풍기처럼 돌려보내고, 자신의 시선을 창문으로 내보낸다.

자율성을 되찾는 데는 규칙 몇 가지가 도움이 된다. 첫째, '내가 선택했다'는 흔적을 매일 하나 남긴다. 커피를 고를 때도, 걸을 길을 정할 때도, 이메일 첫 문장을 바꿀 때도. 작은 선택은 근육처럼 단련된다. 둘째, 냄새를 기록하듯 감정의 일지를 적는다. "오늘의 공기: 장마 전별식 같은 눅눅함. 처방: 12분 창문 열기, 미지근한 물 한 컵." 감정은 물리적이라고 믿을 때 다루기 쉬워진다. 셋째, '좋았더라'를 하루에 한 번 말한다. 결과가 아니라 시도에 대해. 창세기처럼 대담하게, 금강경처럼 가볍게.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느끼는 '냄새'는 타인의 평가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당신의 가치도 묻어 있다. 오래 버틴 인내의 냄새, 실패를 끌어안고 하루 더 나아간 용기의 냄새,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집에 돌아오는 길목의 사람 냄새. 사람 냄새는 언제나 좋은 쪽으로 오래 남는다. 자율성은 바로 그 냄새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누군가가 얼핏 코를 찡그리면, 미소로 답하자. "괜찮아요. 오늘의 나는 조금 진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향으로 찾아올 거예요."

결국 우리는 창세기의 빛처럼 자기 삶에 스위치를 켜고, 금강경의 바람처럼 집착의 먼지를 털어내며, 한 발짝 더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다. 세상은 가끔 숨 막히는 냄새를 풍기지만, 당신은 그 공기를 바꿀 창문을 갖고 있다. 창문을 여는 손잡이는 당신 손에 있다. 오늘의 공기를 맡고, 오늘의 선택을 하고, 오늘의 나를 좋아하자. 그럼 내일, 당신의 방에는 진짜로 좋은 향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향은 어제의 심려가 아니라, 내일의 가능성에서 온다. 당신에게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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