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낚싯바늘과 존재의 항로

인생이라는 바다는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광대한 시험장이다. 그러나 이 시험엔 문제도 정답도 없다. 그저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불며, 누군가는 멀리 나아가고 누군가는 제자리에서 배를 돌릴 뿐이다. 현대의 직장인은 이 바다의 낚시터에 던져진 채, 오늘도 먹잇감이 될지, 혹은 어부가 될지를 두려움 속에 가늠한다. 문제는, 대개 둘 중 무엇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생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생존의 낚싯바늘 ― '괜찮은 타협'이라는 이름의 미끼
그는 평범했다. 아니, 평범보다 약간 아래였다. 중하위권 대학, 낮은 학점, 명확하지 않은 목표. 이 조합은 이미 실패의 프롤로그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현대 사회의 표준적인 인물상이다. "하고 싶은 게 뭔데요?"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이 나라의 청춘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생존의 낚싯바늘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발음이 좋지 않아 영업직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지혜였다. 요즘은 솔직함도 경쟁력 없는 시대이지만, 적어도 그는 바보처럼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 '현명한 체념'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수십 번의 간편 지원 끝에 배송서비스 기획자로 취업했다. 축하한다, 드디어 한 줄짜리 자소서가 통했다. 문제는 그가 입사하자마자 더 나은 회사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주입한 불안의 본능이다. 꾸준히 구직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는 그 모습은 어쩌면 현대판 '노예의 여가생활'이라 부를 만하다.

생존의 낚싯바늘은 잔혹하다. 한 번 잡히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안 잡히면 굶어 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굴복하고,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문장을 신앙처럼 되뇌며 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괜찮다는 건 '별로인데 그냥 견디는 상태'의 완곡한 표현이란 걸.

욕망의 낚싯바늘 ― 마라의 연봉협상표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꾼다. 명함에 '팀장' 두 글자가 새겨지고, 회식 자리에서 건배 제안을 받을 때 느껴지는 희열.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당신은 이미 마라의 낚싯바늘을 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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