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의 확률, 그 비겁한 신탁에 대하여

오늘도 사무실의 성소에서는 논리라는 이름의 제물이 도축당한다. 한때 '기획'이라 불렸던 숭고한 설계의 행위는 이제 '받아쓰기'라는 비천한 노동으로 전락했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숫자도, 데이터도 아닌 발생할 확률은 반반 아니냐라는 어느 무능한 동료의 명언이다 . 이 문장은 현대 기업이라는 거대한 연극판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발명된 가장 효율적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전략이다 . 생각의 질량을 줄이고도 그럴싸한 확률론적 외피를 입혀, 전문 지식이라는 본질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기술 말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잠식한 기획의 본질
기업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빠른 대처'라는 허울 좋은 포장은 리스크를 외면하는 가장 좋은 구실이 된다 . 기획자가 미래에 닥칠 부작용(Side effect)을 경고할 때, 권력의 언어는 이를 '진행을 방해하는 노이즈'로 규정한다 . 요청 원문에 그런 맥락이 있었느냐는 형식 논리는 전문성을 거세하는 단두대와 같다 . 비즈니스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설계자가 요구사항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잡부로 전락하는 순간, 회사의 미래는 동전 던지기라는 도박판으로 변질된다 .

용어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방패
오늘날 오피스 전장에는 '애자일'이나 '퀵윈(Quick-win)' 같은 화려한 수사학들이 유령처럼 떠돈다 . 이는 실제 가치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용어 인플레이션에 불과하다 . 지식의 깊이가 얕은 자들일수록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용어 뒤로 숨어버리며, 반반의 확률이라는 말로 도망갈 구멍을 미리 파놓는다 . 문제가 터졌을 때 그때는 최선이었다고 변명하기 위해, 그들은 현재의 논리를 죽이고 불확실성이라는 신탁에 몸을 맡긴다 .

지적 태만이 낳은 괴물들
논리가 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는 잔인하지만, 더 잔인한 것은 그 권력을 쥔 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 기획자의 고뇌가 담긴 논리 업무는 무책임한 자들의 반반이라는 농담 한마디에 무너진다 . 이것은 단순한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지적 태만이 시스템화된 결과다. 우리는 지금 전문성의 몰락을 '효율'이라 부르고, 무책임을 '결단력'이라 칭송하는 기괴한 블랙코미디의 시대를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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