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스템이 바뀌는 속도보다 내 집착이 늦게 늙는다는 데 있다. 승진 두 번쯤 놓쳤을 때 접었어야 할 기대를, 다섯 번까지 끌고 간 건 순수한 lobha(욕심)였다.
회사에서의 집착은 종교적 언어보다 훨씬 더 세속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올해만 버티면', '저 자리만 먹으면', '이 포트폴리오만 만들면'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계산표로.
용어 인플레이션, 현대판 우화들
이솝우화에는 우물에 먼저 떨어진 여우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뛰어든 염소가 등장한다.
요약하면 이거다. "일단 같이 내려와, 나중에 같이 올라가자"라는 말을 믿은 쪽이, 끝까지 우물 밑에 남는다.
현대 회사 버전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이제 애자일하게 간다', 'OKR 기반으로 자율과 책임을', '이제부터는 진짜 데이터 드리븐이다'라는 말은, 사실상 "같이 우물 내려오자"의 고급 버전이다.
스토리보드는 파편화되고, 이메이전트(?)라는 말까지 동원된 PPT가 떠돌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
여우는 보통 '용어를 더 잘 아는 사람' 편에 선다.
애자일, 스쿼드, 트라이브, 듀얼 트랙, 프로덕트 센스… 말은 늘어날수록 책임은 분산되고, 실제로 우물에서 탈출하는 사람은 "네가 좀 버텨줘. 위에 가서 줄 내려줄게"라고 말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협력이라는 이름의 의존성
협력은 분명 필요하다. 이솝우화도, 불경도 '혼자 다 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문제는 협력이 어느 순간 의존으로 구조화될 때다.
9년 동안 개발자에게 휘둘렸던 기획자는, 사실 개발자에게 의존해 살아남던 염소였다. 코드 한 줄 못 건드리면서도, 스펙 한 줄마다 눈치만 봤다.
팀 내 비주류가 된 뒤에는, 협업이 아니라 '검토 요청'이라는 형식으로만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은 같이 우물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혹시 나도 데려가 줄 수 있나요?"라는 부탁에 가깝다.
이때 불경의 무아(anatta) 개념이 기괴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기획자다', 'PM이다', '프로덕트 오너다'라는 타이틀에 정체성을 100 태워 넣은 순간, 조직에서의 위치가 곧 자기 자신이 된다. 그리고 그 타이틀이 흔들리는 순간, 존재감 전체가 붕괴되는 느낌을 받는다.
불확실성 위에서 다시 짜는 전략
결국, 불경의 무상과 이솝우화의 협력은, 회사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이렇게 번역된다.
직함, 부서, 평가 제도, 키워드, 조직 문화는 전부 무상하다. 바뀌는 속도에 상처받을 필요도, 감동할 필요도 없다.
집착은 "올해는 진짜 나를 인정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섯 번 연속 깨져야 겨우 알게 된다. 이건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기대 세팅 문제라는 것을.
그렇다면, 여기서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은 세 가지 정도다.
협력은 '공동 생존'이 아니라 '상호 독립성'을 전제로 설계한다.
같이 일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탈출 수단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역량을 세팅한다.
용어 인플레이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유행어를 한 문장으로 번역하는 습관을 만든다.
'우리도 이제 애자일하게' "이번 분기에도 야근 많을 거야. 근데 이건 문화야."
자기 정체성을 '직함'이 아니라, 팔리는 능력 몇 개로 재구성한다.
이직 시장에서 연봉을 올릴 수 있는 스킬만이, 불확실한 구조 안에서의 최소한의 방패다.
30대 중반, 고립된 기획자가 믿어야 할 것은 '언젠가 알아줄 누군가'가 아니다.
불경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
회사식으로 번역하면,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니, 네가 나갈 수 있는 문만큼은 스스로 만들어 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