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회사에 빛이 있으라 했더니, 창세기처럼 과장님이 커튼을 닫았다. "우리 팀은 자연광 금지야. 자율성? 그건 자유게시판에나 올려." 어둠이 좋다며 눈만 반짝이는 양아치 같은 동료가 커피 쿠폰도 빼앗아 갔다. 그는 내 자유와 아메리카노를 동시에 취득했다. 듀얼 부여.
둘째 날, 아가의 사랑 노래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팀장님, 점심은… 자율적으로?" 팀장님은 달콤하게 답했다. "응, 자율적으로 김밥 반 줄." 내 입술은 포도처럼 마르며 사랑 대신 김밥참치를 노래했다. 알싸한 마요의 비가.
셋째 날, 동료가 내 보고서를 "팀워크"라며 복사해 상무님께 업로드. 상무님이 말한다. "아주 주도적이야!" 내 이름은 주도권에서 주가 빠졌다. 그는 나의 창조물을 가지고 '뼈 중의 뼈'가 아니라 '성과 중의 성과'를 떼갔다. 갈빗대만 남은 나, 의자에서 삐걱.
넷째 날, 자율성 결여를 극복하려 칼퇴를 선언했다. 카드키가 내게 속삭였다. "퇴근은 너를 떠나 내게로 왔다." 문은 닫히고 보안요원은 활짝 열렸다. 나는 야근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꿀벌처럼 키보드를 뙇뙇, 젖은 내 셔츠가 증거물.
다섯째 날, 양아치 같은 동료가 또 다가와 귓속말. "형, 네 캘린더 좀 빌려. 내 일정이 텅텅이라 양심을 채워야 돼." 결국 내 일정은 기업용 텀블러처럼 그의 입에 붙었다. 나는 물처럼 흐르되, 컵은 늘 그의 것.
여섯째 날, 나는 아가의 톤으로 자기애를 선언했다. "내 프로젝트는 내 것, 내 성과는 내 몸의 포도송이." 그런데 구글시트가 대답한다. "공유됨." 순간, 내 사랑은 댓글과 권한 요청으로 쪼개졌다. '보기 전용'인 내 인생, 누가 '편집 가능' 좀 눌러줘.
일곱째 날, 쉬려고 누웠더니 팀 채팅이 속삭였다. "주일에도 알림이 있으라." 알림이 태초에 있었다. 하트 반짝 이모지와 함께 '빠른 피드백 부탁'이 창조되었다. 나는 반짝임을 끄고, 심장만 반짝였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네온사인.
그리고 결론. 창세기는 말한다, 다시 시작하라고. 아가는 속삭인다, 사랑하라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양아치 같은 동료에게는 사랑 대신 회의록을, 자율성 결여에는 사랑 대신 연차계를. 오늘도 내 책상 위에 써 붙인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복붙 금지."
내 키보드는 아멘 대신 엔터로 대답했다.